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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에서 가만히 서서 메세나폴리스를 바라보았다. 메세나폴리스는 17세의 대운이 끝나고 지금 대운이 시작되면서 천안을 떠났고, 내가 처음 서울에 발 디뎠던 곳이다. 서울에 사는 형을 찾아갈 수도 있었다. 형은 하급 공무원이지만 서울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달라진 것이 있을까? 10년 전보다 많은 것이 명징하게 보인다. 부등시인 육체의 시력은 점점 안좋아지고, 아직 가끔, 돌연 실명할 거란 이유 없는 걱정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10년 전에 비해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운명,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를 둘러싼 세계 에 대한 해상도는 높아진 셈이니, 촌놈이자 갓난 아이가 드디어 시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지식을 이처럼 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에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무튼, 가만히 서서 이 상징적인 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간다면 어떨지를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메세나 폴리스는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크고,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창이 나 있어서 실내 온도 조절에 많은 돈을 써야할 것이고 그런 온도 조절 장치들조차 내구성들이 온전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생이 아닌 이상 이토록 비효율적인 곳에 살아갈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옆에 있는 푸르지오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여기서 살더라도 재산세는 오백 팔십만원정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서교동 주변 배경이 어쩔 수 없이 매우 따분한 것도 받아들여야한다.
한마디로 어디서 사는가 하는 것은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었다.
돈 자체는 보상이 아니라 미끼이고, 거기로 이르는 여정 자체가 진정성 있는 보상인 것이다.
아마도 레이 달리오가 그의 저서 <원칙>에서 한 말로 알고있다.
아무튼 내가 자주 가는 서점 교보문고에 들러서 조던 피터슨의 책과 정신과 의사가 추천 해 준 아들러의 심리학 책을 읽어 보았다.
책으로 처음 접해 본 조던 피터슨은 사례적이고 함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용적인 책일 수 있겠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
아들러 마찬가지. 나는 심리학이 인간의 정신을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랬다.
밤에는 경기 양주로 별을 보기 위해 드라이브를 나갔다. 길이 너무 헷갈려서, 너무 졸려서 힘들었다.
아이패드 앱을 이용하면 별자리와 행성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오늘 목성이 그 어떤 천체보다도 밝다.
간만에 좋은 관측지를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빌어먹을 중미산은 이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고 그래서 광공해가 심하다.
나는 별이 보이는 언덕 내리막에 가만히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이따금씩 유성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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